2009년 6월 25일 목요일

비자발적 표절 : 문화역량 강화의 중요성

 위키백과를 돌다가 재미있는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은 ZINDA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포스터를 보시면, 대충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왼쪽 남자나 오른쪽 남자가 주인공이겠고 다른 한편이 적이겠죠. 영어로 써진 걸 보니 대충 복수극인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일까요? 한번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어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네요.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참고영상을 준비해 봤습니다.


 위에 링크한 위키백과 문서에서도 상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표절했다고 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 올드보이는 만화 《올드보이》를 각색하였습니다만, 잘 만든 영화가 그러하듯 원작을 뛰어넘어 존재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타 매체를 게임으로 각색했을 때 참패-_-하기 쉬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위 복도 격투장면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원작만화 올드보이의 각색이라기보다는 박찬욱의 영화 올드보이에 대한 표절로 보이는 이 ZINDA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입니다. 저는 당시 천리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네트의 광대함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고 한달 전화요금이 어마어마-_-하게 나올 정도로 애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절 얘기만 해도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기니 적당히 다음 기회로 넘깁니다.) 《드래곤 라자》를 낳은 하이텔, 《엽기적인 그녀》를 낳은 나우누리와 달리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천리안 연재게시판에도, 나름 높은 지명도를 지니던 연재작가들은 있었습니다. 유머게시판에서 전용 게시판을 받고 활동하던 사람 중에, 저보다 세 살 위인 것으로 기억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겠죠?) 연재가가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연재작가중에서는 추천수도 적고 조회수도 적었습니다만, 전 왠지 그 작가 글이 좋더군요. 개그가 딱 제가 받아들일만한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걸 보다보면 왠지 '아 스토리가 이러면 좋을텐데'하고 생각하거나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새우깡보다 치토스가 맛있던 시절의 초등학교 3학년생은 (제 딴에) 재미있는 글을 써서 유머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다음날, 저는 제가 지금까지 호의를 지니고 보고 있던 사람이 저한테 적대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 두 눈으로 확인하고, 항의글의 조회수가 더 올라가기 전에 제가 쓴 글을 지웠습니다. 뭘 숨기랴, 제가 쓴 글은 그냥 등장인물 이름만 바꾼 정도의 표절작이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러한 일은 어떠한 사람이 창작에 손을 대고자 할 때 매우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는 특히 미성숙한 단계에서 심하게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과거, 귀여니 데뷔 시절의 주요 비판 중 하나는 《오렌지 로드》로 대표되는 일본 소녀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일부는 이를 표절이라고 했습니다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말할 수 있는 점이라면, 만약 그녀가 감명깊게 읽었던 만화가 오렌지 로드였고 그 이야기 구조(인물, 배경 등)가 머리속에서 '멋진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다면, 그와 같은것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그게 그 상황에서 작가가 짜낼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니까요. 그 결과가 표절이라고 한다면 책임을 져야겠지만, 인간으로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한명의 인간으로서 이해는 갑니다. (물론 우리는 그러지 않기 위해서 훈련을 합니다.) 이 '비자발적 표절'은 딱히 작가의 창조성을 비하할 용도로 쓰여서는 안됩니다. 모짜르트가 다섯살 때부터 작곡을 한 천재이기는 합니다만, 많은 학자들이 스무살 이전의 작품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한편 저는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런 '모작'으로의 '습작'수준의 작품이 장르의 변환, 언어의 변환, 문화적인 변환을 거쳐 충분히 상업성이 있는 작품으로 변모된다는 점이죠. 오히려 그런 점에서 귀여니는 인터넷 소설이라는 새로운 표현양식에 맞는 적절한 내용을... 아. 삼천포로 와버렸네요.

 더 나아가, 이러한 비자발적 표절 행위는 문화를 공유하는 언어권 전체를 두고 볼 때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언어권 수준에서의 비자발적 표절 행위는 특정 장르(영화, 소설 혹은 더 작은 단위)의 내용이 다른 언어권으로 넘어감에 따라 비슷해 지는 것, 혹은 열화하여 복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작게는 로봇물의 로봇 디자인 도용(이는 완구제작-즉 스폰서-과도 연결되는 민감한 이슈입니다)부터 크게는 '한류가 일본에서 히트한 이유는 아줌마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까지 다양한 범주에서 벌어집니다. 요즘의 사례를 들자면 한국산 '라이트 노벨'이 있겠습니다. 시드노벨 위주로 많은 작가들이 분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분야는 일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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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hong90z.egloos.com : 개인적으로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자발적 표절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걸까요? 개인적으로는 이 컨텐츠가 '외국에서도 팔리냐'는 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작'이라 칭해질 수 있는 것을 비자발적 표절 행위로 든다면, 그러한 작품을 '팔리게' 해준 요인을 제거해 보면 이 작품이 과연 '모작 수준의 습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죠. 언어권 사이에서 이 장벽은... 두번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언어'입니다. 문화도 포함되죠. 영화같은 분야에서 한국은 (언어권 수준의) 비자발적 표절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많은 작품으로 증명한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올드보이가 그 예죠.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그 세계가 어딘가 하는 의문의 소지가 있지만) 작품이 꽤 있습니다. 중국과 홍콩은 독자적인 무술영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 라이트 노벨 작가들은 오늘도 크지 않은 원고료와 싸워가며 분투하고 있지만, 한국산 라이트 노벨이 일본에 가서, 일본산 라이트 노벨이 한국에서 그러하듯,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아직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 힘들겠죠.

 물론 이 판단기준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순문학처럼 번역하는 데에 상대적으로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장르에는 적용하기 힘듭니다. 반면 만화같은 장르에는 상대적으로 적용하기 쉽겠지요(2~3일마다 한 권을 번역하는게 업계 상식인 곳이니까!). 또 문화 자체가 특수하여 문화의 장벽을 넘는 것도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는, 아직 한국의 몇몇 문화상품 분야에는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언어권)보다 역량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한국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도는, 잡학다식을 모토로 하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세계에서 제일 많은 양의 영화를 생산하는 나라입니다. 세계적인 흥행에서는 할리우드에 밀리지만 탄탄한 영화 산업 기반을 지니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 이면으로는 할리우드산 영화를 표절하는 경우가 많은, 그리 떳떳하지만은 않은 일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죠. 표절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는 다를지도) 이 포스팅을 위해 구글을 뒤지다 엽기적인 그녀도 인도 영화에서 표절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이쯤되면 한국은 괜찮은 영화를 지닌 나라라고 자랑하고 다녀도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비자발적 표절 행위를 없애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어렵습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면 됩니다. 그 장르의 많은 작품을 읽고, 다른 장르도 읽고, 역사서를 읽고, 교양을 키우고, 모르는 분야의 자문을 구하고... 그야말로 모짜르트의 15년을 보내는 겁니다. 한 문화권에서 그러한 표절 행위를 근절하는 것- 그러한 '비자발적 표절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작품성으로는 당연히, 성공이 아니겠죠)을 막는 것- 나아가 그러한 것들이 시장에 발을 못 붙이게 하는 것은, 투자자, 제작자, 이용자 모두의 문화적 역량을 기르는 데에, 즉 그 문화(언어권)의 구성원 개개인이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는 데에 있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의 지원강화 및 접근성 개선, 양질의 번역서 제공, 충분히 큰 시장 규모, 공정한 수익 분배 구조... 어느 것도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만, 하나하나 접근하며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한국 영화가 1926년 《아리랑》으로 시작하여 2009년 《마더》까지 오는 것 처럼 말이죠.

 포스팅 자료를 찾다, ZINDA에 대한 괜찮은 기사를 찾아 링크해 둡니다. 이 포스팅을 시작할때만 해도 ZINDA에 대해서 적대적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스트가 좀 삼천포로 빠진 감이 있는데... 다른게 아니고 《로보트 태권브이》가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태권브이는 당시 정황상 어떻게 해도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것이 로봇에 태권도를 접목시키고, 조종사의 움직임과 일치시킨다는 발상입니다. 적어도 한국적인 무언가에 대한 시도는 한 셈입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한국적인 로봇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라고 말해보지만, 우리나라가 요즘 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드나요? 메탈파이터는 뭐하고 있으려나...-_-;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쿨한 인도영화를 볼 수 있게 되고, 한국의 라이트노벨이 20개국에 수출되고, 무엇보다 제가 만든 게임을 자랑스럽게 표절걱정 없이 시장에서 팔 수 있게 되는게 말이죠. 우리들 모두가, 또 제가 뼈를 깎아야 하겠죠.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게임 디자이너의 학습
    게임 디자이너는 얼마나 배워야 할까?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워야 할까? 우리가 하는 일이 게임의 형식적 미학을 탐닉하는 매니아를 위한 것이라면 별로 없을 것이다. 기존의 디자인에서 자가증식만 하면 된다. 하지만 게임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문화∙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전혀 다르다. 게임 디자이너는 가능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한 명의 기술직 사원이 아니라, 한 명의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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