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윈터 나이츠, 바람의 나라, 울티마 온라인...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최초의 (그래픽) MMORPG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나올때 자주 언급되는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네버윈터나이츠가 1991년[footnote]
http://www.mcvuk.com/press-releases/34298/NeverWinter-Nights[/footnote], 바람의 나라가 1996년, 울티마 온라인이 1997년에 서비스를 개시했고, 네버윈터나이츠는 1997년 서비스를 종료하였으며 나머지 두 개는 지금까지도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AOL이 배포하고, TSR(D&D를 만든 회사)이 제작에 참여한 네버 윈터 나이츠는, 지금은 그 자료를 찾기 쉬운 편은 아닙니다(특히 저같은 어린-한국인-게이머한테는 말이죠).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특히 PvP가 성행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향후 게임의 권리와 관련한 AOL과 TSR의 다툼으로 1997년 서비스가 중단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994년 개발을 시작해 1996년 서비스를 시작한 넥슨의 바람의 나라는, 굳이 말하자면 PvE와 플레이어의 무한한 성장을 중점으로 둔 MMORPG라고 할 수 있습니다. PvP를 할 수 있는 곳도 존재하고 그 재미를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바람의 나라는 수많은 던전을 탐험하며 몬스터를 사냥하고 경험치를 얻어 자신의 능력치(체력과 마력)를 올리는 게임이었습니다.
1997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울티마 온라인은 오리진 사의 작품이었습니다. 이 게임이 당시 추구했던 것은 '무한의 자유도'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울티마 온라인을 추억합니다. 요즘은 MMORPG가 PvP적인지 PvE적인지 (혹은 두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나뉘어서 디자인되는 편입니다만, 위에 서술한 바람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그 개념이 명확하게 나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러한 초기 MMORPG는 단지 가상 공간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것을 보여주는 것에 전념하였고, 그러한 상황에서 게이머들이 느낄 수 있었던 재미는 새로운 세계를 관찰하는 것, 내가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여러가지 있다는 것... 이러한 탐험가적 재미가 있었지 않나 합니다. 물론 성장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초창기 온라인 게임- 그러니까 온라인 세계를 보여주고 제공하던 게임-을 만들던 개발자들은 한가지 문제점에 봉착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컨텐츠를 소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곧 게임에 익숙해질 것임을 의미했고(가장 빠른 속도로 컨텐츠를 소모하기 위한 최적해도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찾아냈고) 곧 사람들은 게임에 질릴 것이고 그에 따라 경영진이 개발자에게 월급을 주는 일도 질리게 될 것이었습니다. 게이머들의 진보에 따라 개발자들도 진보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 결과는 우선 재미 요소의 연구에 따른 PvE와 PvP의 명확한 분리, 그에 따른 집중으로 이어졌습니다.
PvE는 게임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게임 행위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1인용 게임밖에 없었던시절 게임의 재미 요소는 대부분 이쪽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패미콤용 RPG 같은 거 말입니다. 주인공(과 그 파티)을 단련시켜서 강대한 적을 무찌르는 이야기가 그 예가 되겠죠. 이런 부류의 재미는 주로 자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알기 쉽게 (레벨과 같은 수치, 강한 적의 퇴치 여부 등)확인시켜주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PvP도 게임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 왔습니다. 오히려 '컴퓨터'라는 존재가 있어야 탄생이 가능했던 PvE보다 오랠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나 체스에서 대전 격투 게임까지... 이런 게임의 재미 요소는 경쟁과 승리가 주는 우월감이겠죠. 이 게임을 얼마나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냐와 상관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이런 게임의 주요한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창기에는 이러한 사상이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플레이어 간 공격이 불가능하거나, 플레이어 간 공격이 가능하지만 그것에 마땅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이 때 붙었던 논쟁이 바로 PK(Player Killer)논쟁이고, 큰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PvP에 대한 가치가 확립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PK라는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고,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전투로 상대하는 일이 거의 스포츠와 같은 느낌이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간단 PvE vs PvP 비교
물론 이 두 가지는 확연하게 분리되는 요소는 아닙니다. 이 두 가지를 동등할 정도로 같이 집어넣은 게임도 있고, 어떤 게임의 PvE나 PvP는 상대방의 특징을 자신의 주요한 특징으로 지니기도 합니다. MMORPG의 PvP는 그 기본적 장르의 특성상 성장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기 힘듭니다. (성장이 빠진 PvP MMORPG는 장르가 캐주얼 게임이 되기도 합니다) PvE에서 복잡한 컨트롤을 요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말이죠.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마지막 줄- '개발자의 역할' 부분입니다. 적당히 수긍하실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데, PvE에서 개발자는 E 부분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등산가를 위해 산을 만드는 행위이고, 추리소설 탐독자를 위해 트릭을 만드는 역할입니다. 반면 PvP에서의 개발자는 심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링을 만들고, 경기를 지켜보다가 공정하지 못한 점(특정 클래스가 너무 강하다던가)을 발견하면 그 점을 수정하는 역할입니다.[footnote]물론 PvP에 있어서도 개발자는 컨텐츠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한번 궤도에 오르고 나면 심판에 가깝습니다. 이는 스타크래프트에 있어 '최초 게임 발매'와 '밸런스 수정패치 제작'의 차이와 같습니다[/footnote]
위에서 언급했듯이, PvE 부분은 아직도 개발자가 컨텐츠를 만들면 플레이어가 소모하는 방식의 경쟁이 계속되었습니다.(이는 PvP가 부분적으로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개발자들은 유저의 컨텐츠 소비 속도를 늦춰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속칭 '노가다'는 그런 필요성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어떤 아이템을 많이 모아오라던가, 어떤 몬스터를 일정 이상 잡아 오라던가 하는 퀘스트가 대표적입니다. 제가
테일즈위버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지컬 본스켈의 아교 반복퀘스트라는건 알 사람은 아는 사실이죠(...). 게임 전체에 이런 반복 노가다를 넣은 게임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러한 풍토는 각종 리니지2 클론게임들의 봇이 PC방 남는 컴퓨터마다 켜져 있는 사태를 불러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라그나로크 온라인 프리서버 사태[footnote]그라비티 사의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경우에는 엄청난 수의 프리서버가 활개를 쳤다. 혹자는 이것을 '테스트서버조차 유료로 운영하는 운영에 반발하여'라고 말하지만,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나올때만 해도 '오픈베타족'이 온라인 게이머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했듯 그냥 사람들이 공짜로 온라인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프리서버는 대개 '하자섭'과 '놀자섭'으로 나뉘는데 '놀자섭'은 원래 게임의 밸런스를 거의 무시하고 막 나가는 섭이고, '하자섭'은 그래도 어느정도 '재미있는' 수준의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서버였다. 그렇다고 해도 하자섭의 배율(본 서버에 비해 경험치 증가량, 돈 드랍량, 아이템 드랍율이 얼마나 높은지 나타내는 척도)도 적어도 5배정도는 되었다.[/footnote]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저들이 이런 노가다는 싫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나오는 게임들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볼 수 있듯이 퀘스트 디자인에서 그러한 노가다를 배제하려 한 흔적이 보입니다. 첫번째 확장팩인 불타는 성전부터는 불필요한 이동조차 배제하려 하였고 말입니다. 물론 NC소프트의 아이온은 그런 거 없이 몬스터 600마리 300마리를 잡아오라고는 합니다만...

출처 아이온인벤
물론 와우의 주안점은 퀘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퀘스트가 주된 게임 향유 수단이 아니게 되는 '만렙' 이후의 컨텐츠에 있으니 이 둘을 비교하는 건 좀 너무한 처사긴 합니다. 와우도 그닥 상황이 좋지는 않은데요. 단지 와우에서는 게임의 초점이 이러한 퀘스트와 필드 플레이에서 인스턴스 던전으로 이행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러한 점에서 와우를 MMORPG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습니다만[footnote]주된 게임적 요소가 거의 인스턴스에서 벌어지기 때문에[/footnote] 뭐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죠. 와우는 대규모 패치를 통해서 컨텐츠를 추가합니다만, 이것은 PvE에서 새로운 던전, 지역과 새로운 장비(gear)를 등장시키는 것, PvP에서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고 새로운 장비를 등장시키는 것이 주가 됩니다. PvP쪽에서 WoW가 제공하는 새로운 컨텐츠란 거의 새로운 장비(더 강력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수치야 그냥(물론 그냥은 아닙니다) 집어넣으면 되는거고, 장비의 외형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사람들은 많은 우려먹기와 재탕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PvE에서도 보스의 공략 패턴등에 다양성의 한계가 있다던가,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던가 하는 불평이 나오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고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입니다만) 혹자는 더 고위 던전에 가서 더 고위 장비를 차지하는 게임 패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블리자드 스케일의 회사라도 사용자가 만족할 만큼 다양한 컨텐츠를 재빠르게 공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블리자드 스케일의 사용자 수가 있다보니...)
그렇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PvE이냐 PvP이냐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온라인 게임은 게이머와 개발자가 컨텐츠를 두고 싸우는, 컨텐츠 소모와 컨텐츠 확충 간의,
Player versus Developer Game: PvD Game인 것입니다.
넥슨사의 마비노기(2004)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천재적인 게임입니다. 온라인 게임의 계보에서 보자면 울티마 온라인을 계승했고, 그렇다고 단순한 카피캣도 아닌, 새로운 것을 보여준 게임이었습니다. 넥슨의 천재적인 청소년 공략 능력과 데브캣 개발진의 천재적인 게임 모델 개발에 힘입어 두 번 나오기 힘든 Genuinity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온라인 게임의 상용화 서비스를 꺼려하던 시절에 '제발 빨리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플레이어의 반응을 이끌어낸 게임이었고, 파티 플레이나 인스턴스 던전의 개념을 한국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게임이었기도 했습니다.

출처 : 마비노기 공식 홈페이지
마비노기 플레이 중 통과해야 했던 퀘스트 중에 '이상형 찾기'라는 퀘스트가 있었습니다. 이걸 직접 해 보신 분이라면 치를 떱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NPC의 이상형을 알아오라'는 내용의 퀘스트였는데, 이 이상형이라는 건 대부분 '특정 나이, 외모, 능력치, 재산을 지닌 플레이어 캐릭터'였기 때문에,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사람들이 동분서주하고는 했습니다. 약 40명이 넘는 NPC의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었고, 일부 외모조건(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이나 높은 능력치 조건을 요구하는 캐릭터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서 '비슷한 캐릭터가 올때까지' 플레이어들이 한 NPC 앞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장관을 연출하곤 했습니다. 플레이할 때는 몰랐지만 (그리고 재미있게 했지만) 이것도 일종의 컨텐츠 소모 지연으로, 당시 컨텐츠 소모속도가 너무 빨라 고육지책으로 했다는 커멘트를 들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노가다성 컨텐츠 소모 지연보다는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들끼리 힘든(?) 나날을 공유하며 캠프파이어 주위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식의 컨텐츠 소모 지연이 훨씬 낫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저 퀘스트는 대부분의 (당시) 플레이어가 저 퀘스트를 통과한 뒤, 조건이 상당히 완화되었습니다. 당연한 거지만 말입니다. 이런 '월드 이벤트'에 가까운 컨텐츠 소모 지연이나 아니면 대놓고 '월드 이벤트'(와우의
흐르는 모래의 홀 퀘스트나 마비노기의 봉인석 등)는 꽤나 긍정적인 형태의 컨텐츠 소모 지연입니다만, 그닥 쓰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회성이니까요.
컨텐츠를 두고 벌이는 플레이어와 개발자 간의 싸움은,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말이죠. 끝없는 소모전일지도 모릅니다. 원래 온라인 게임이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 아닐수도 있고 말이죠. 전 이 소모전이 좀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