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지정문답 : 『게임』 from 퍼플렉싱

  퍼플렉싱님으로부터 지정문답 바톤을 받았습니다. 주제는 『게임』. 바톤 문화도 참 간편하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다른 언어로는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바톤이라는 것도 꽤나 한국의 블로그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시스템화 되어도 좋지 않을까 가끔 생각하기도 합니다. 양식 복사-붙여넣기하는게 저한텐 좀 귀찮은 일이거든요.

 

  요즘 블로그에 들어올 짬이 없어서 올리는게 매우 늦어졌네요 :( 좋은 주제 주신 퍼플렉싱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흐흐.

 

이렇게 긴 여정을 거쳐...

 

1. 최근에 생각하는『게임』.

 

  최근에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 ......오랜 기간 게이머였다가, 게임을 만드는 입장이 되어 보니 이거 참 쉬운게 아니군요. 지금까지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게임을 관찰했다면, 지금은 게임을 만드는 프로세스라는 관점에서 게임을 관찰하고 있다고 할까요. 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더 배워 봐야죠.

 

  요즘 나오는 게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음,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게 있어서 게임은 좋은 서사 공급처이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요즘 게임들(특히 국산 온라인 게임)은 아쉬운 점이 많네요. 창세기전 3 파트 2가 아무리 대사 스킵기능이 없었다고 해도 즐거워하며 플레이했던 저로서는...

 

2. 이런 『게임』엔 감동!

 

  감동을 받은 게임이 몇 개 있죠. 그중 제일 먼저 꼽고 싶은 건 FALCOM사의 영웅전설 시리즈입니다. 하얀 마녀 이후로는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합니다만, 역시 제 안에서의 최고는 '바다의 함가'일까요. 음악이 정말 신의 경지였습니다. 다른 이야기들도 물론 좋아합니다. 영웅전설 시리즈의 이야기는 제 머리속에서는 하나의 이야기 원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아... '하얀 마녀'도 매우 좋아하는데... 음, 역시 영웅전설 안에서 순위 같은 건 매길 수가 없어요.

 

  닌텐도, 게임 프리크의 포켓몬스터 시리즈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게임 자체보다는 그 게임과 함께 나오는 만화인 '포켓몬스터 스페셜'의 공이 큰데요, 제 안에서의 '원작을 재해석하여 살을 붙이기'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켓몬은 요즘도 나오면 사고, 만화 쪽도 꾸준히 모으고 있습니다.

 

  요즈음 게임 중에서 감동받은 게임들이 있다면 VALVE의 'Portal'과 남코의 '괴혼' 시리즈일까요. 우선 상상력에 놀라지만,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 아이디어를 잘 구현해서 게임으로 만드는 것'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놀랍군요. Portal같은 경우에는 게임 내부에 개발자 커멘터리를 넣어놨는데, 요즘 여러번 읽고 있습니다.

 

3. 직감적으로 『게임』.

 

  21세기를 맞은 인류에게 주어진 새로운 장난감. 어떻게 가지고 놀 수 있을지 아직 '어린' 인류는 잘 모릅니다.

 

4. 이런 『게임』은 싫어.

 

  우선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니는 것이... 나는 3대 장르를 안 해, 라고 합니다. 그 3대 장르는 스포츠, 대전, 점프[footnote]마리오 시리즈와 같이 필드위를 이동하여 점프를 잘못하면 낙사하는 게임...의 통칭인데 요즘에는 플랫포머 게임이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전 3D로 점프가 복잡한 게임도 잘 못합니다.[/footnote]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1) 현실의 시뮬레이터를 좋아하지 않고 2)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3) 복잡한 타이밍, 조작을 필요로 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번과 3번은 단순히 '제가 못하기 때문에' 싫어하는 이유입니다만, 1번은 뭐... 게임이라면 더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냥 그래요.

 

  그냥 저건 제가 잘 못하는 게임들이고, 제가 싫어하는 게임은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게임'일까요... 저는 경쟁이나 성장같은 요소에 딱히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MMORPG는 대체로 피하는 편입니다. 마비노기는 딱히 그런 것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고, WoW는 경쟁과 성장이 주된 요소였기는 했지만, 퀘스트라인등의 스토리와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재미 등 부수적인 서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이 말은 제가 만렙을 찍고 나서는 와우에 급속히 흥미를 잃었다는 소리입니다).

 

  또 제작과정에서 '상업성 이외의 무언가가 없이' 만들어진 게임들도 싫어합니다. ......아니 별로 MMORPG를 비판하고 싶어서 그런건 아닙니다만... 굳이 제작자의 철학같은 게 아니더라도 분명한 게임의 색, 게임을 만든 회사의 색, 그런 게 보고 싶다는 거죠. FALCOM의 게임 전반을 꿰뚫는 동화적인 분위기와 JDK의 음악, 여신전생 시리즈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레드얼럿 시리즈 특유의 정신나감 같은 거 말입니다.

 

5. 좋아하는 『게임』.

 

  좋은 이야기를 가진 게임을 좋아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영화나 책같은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것 보다, 게임으로 이야기를 얻는 것을 좋아하는 인종에 속합니다. 게임에서 인터랙티비티를 중시한다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게임을 필요로 하는 곳은 정보와 서사의 욕구라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이런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괴혼이나 Portal, 또 Braid도 단순히 마음에 듭니다. 퍼플렉싱님을 통해 소개받는 여러 게임들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번외적으로, 아마츄어들이 고생해가며 만든 게임들을 좋아합니다. 월급으로 고용된 것도 아니고, 수업때문에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지 게임에 대한 열정만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들을 저는 사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습니다.

 

6. 이 세계에 『게임』이 없었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세상이라면 아마 컴퓨터와 반도체 기술도 없지 싶습니다. 아니면 이 세계의 인간들은 '감정적 보상'이 필요 없도록 짜여있었겠죠. 가능성 면으로는 전자가 더 납득할 만한 답인 것 같습니다.

 

7. 다음 넘겨줄 사람...

 

  없어요. 폐기합니다. ......음 바톤 관리하는 솔루션을 만들어서 판다면 NHN이나 SK한테...

댓글 6개:

  1. 저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서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을 이른바 '스토리 게임'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런 게임은 게임이라는 거대한 틀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그 틀의 중요한 하나의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케이드 게임에서 점수가 게임플레이의 보상이듯, 스토리 게임에서는 스토리(혹은 스토리의 진행)가 게임플레이의 보상인거죠.

    그런 게임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호작용주의자이긴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중요한 건 그 게임이 어떤 구조나 형태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주느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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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퍼플렉싱 - 2009/08/20 01:05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스토리를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카마이타치의 밤' 등의 사운드 노벨과 같은 타이틀의 경우, 저는 이것을 확실히 (하이퍼텍스트도, 문학도 아닌)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스토리가 내가 한 게임플레이에 대한 보상인가? 라고 생각하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는 거죠. 더 심각하게는 '쓰르라미 울 적에'등과 같이 극단적으로 선택지와 같은 개입을 배제한 부류도 있습니다만... 퍼플렉싱님이 이것을 게임이라고 인지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확신이 안 서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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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이삼 - 2009/08/21 03:47
    비주얼 노벨을 게임으로 바라본다면, 아주 단순한 구조의 게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들려줄게, 너는 그 이야기의 흐름을 선택해 봐." 하지만 역시 게임보다는 문학에서 비롯된 요소의 비중이 크기에, 문학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구조로도 이해될 수 있지만, 게임이라고 하기엔 문학의 성격이 짙은 거죠.



    하지만 역시 게임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작품이 주는 경험이고, 지금은 게임이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의 주류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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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퍼플렉싱 - 2009/08/20 01:05
    맞는 말씀입니다. 비주얼 노벨을 게임이라고 간주하는 것의 필요성은 상당히 다루어 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지만 너무 길어져서 아마 포스팅을 하나정도 할애할 정도의 양이 나올 것 같군요.



    어떤 것(작품?)이 게임이냐 아니냐를 다루는 것은 대개 무의미하죠. 그 정의조차 애매해지는 경계가 있으니까요. 단지 저는 이러한 식으로 컴퓨터 장치를 통해 인간에게 어떤 경험을 주거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체(퍼플렉싱님께서 중요하다고 말하신 부분)를 게임이라고 부르고 싶을 따름입니다. 음... 하지만 아직까지 올바른 어휘를 찾지 못했어요. 어쩌면 그런 어휘가 없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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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게임에 대한 취향이 유사한 부분이 있네요. 하핫.

    어렸을 때는 타이밍과 액션을 추구하던 때가 있었지만 너무나 옛날이고(90년대 초중반)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서사와 성장이라는 요소에 매력을 느끼는 중입니다.



    게임이란느 자체적인 시장내에서가 아닌, 다른 매체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로 게임은 인터랙티브한 매력이 훨씬 충만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짜여진 서사라고해도 역시 짜여진 선택의 기회라도 제공해주니깐요.



    게임에대한 폭넓은 정의가 인상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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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키라주니어 - 2009/09/15 03:56
    저는 어릴 때부터 타이밍, 액션은 참 쥐약이었어요.

    체육도 그렇고, 그냥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제어하는게

    저랑 안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선택의 기회'가 기존의 매체에서 거의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게임이 현재 주력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는 자명한 듯 합니다. 그것보다는 게임이라는 매체는 더 널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을 어떻게 넓힐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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